
지난해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정가 1만 5000원짜리 외야석이 30만~50만 원, 10만 원대 내야석은 최고 999만 원까지 치솟았다. K팝 콘서트 예매창에서도 매크로 프로그램이 순식간에 좌석을 싹쓸이하고, 몇 분 뒤 중고거래 사이트에는 웃돈이 몇 배씩 붙은 ‘암표’가 올라오는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됐다. 이런 암표 대란에 정부가 마침내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지난 8월 28일부터 시행된 ‘암표 근절법’, 판매금액의 최대 50배에 달하는 과징금이 부과된다.
과연 이번 조치는 수년째 반복되어 온 암표 문제를 실제로 잠재울 수 있을까.
무엇이 달라졌나 — 매크로 없이도 처벌
기존 법은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부정 구매’만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문제는 실제 암표 거래 대부분이 매크로 사용 여부를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점이다. 판매자가 매크로를 썼는지 안 썼는지 밝혀내지 못하면 법을 적용할 수 없었으니,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법’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에 개정된 공연법·국민체육진흥법은 이 허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매크로 사용 여부와 무관하게, 보안 조치를 우회해 입장권을 구매하거나 상습적·영업적으로 정가보다 비싸게 되파는 행위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즉 “매크로를 안 썼으니 문제없다”는 식의 변명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과징금, 얼마나 세졌나
핵심은 역시 징벌적 과징금이다. 부정판매 금액과 판매 수량에 따라 최소 2배에서 최대 50배까지 차등 부과된다. 공연은 판매금액 5만 원 이상이면서 2매 이상, 스포츠는 2만 원 이상이면서 2매 이상 부정판매한 경우부터 과징금 기준이 적용된다. 여기에 더해 부정판매로 얻은 부당이익은 전액 몰수하거나 그 가액을 추징할 수 있고, 과징금을 기한 내 내지 않으면 세금 체납과 똑같이 강제 징수된다.
당초 정부가 검토했던 안은 ’10~30배’ 수준이었지만, 국회 논의 과정에서 이보다 더 강한 ‘최대 50배’로 확정됐다. “형사 사건으로 끌고 가면 시간과 인력 소모가 크니 과징금을 대폭 올리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신고자에게 돌아가는 인센티브도 눈에 띈다. 부정구매를 신고하면 최대 5000만 원 이내, 부정판매를 신고하면 부과된 과징금의 50% 범위에서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감시망을 통해 암표 시장을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실효성 있을까 — 남는 물음표들
문제는 ‘얼마나 잡아낼 수 있느냐’다. 온라인 암표 거래는 대부분 익명 계정으로 이뤄지고, 판매자 특정과 추적에 한계가 뚜렷하다. 구매자 역시 어렵게 구한 표를 취소당할까 봐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수사 단서 확보 자체가 쉽지 않다. 게다가 해외 플랫폼을 통한 거래에는 국내법 적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도 근본적인 한계로 꼽힌다.
업계 반응도 엇갈린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매크로를 통한 암표는 분명 사라져야 하지만, 웃돈을 주고서라도 표를 구하려는 수요 자체를 막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해외처럼 어느 정도 합법적인 재판매 통로를 열어주지 않으면 그 수요는 추적이 더 어려운 음지로 숨어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대형 플랫폼들이 잇따라 뛰어든 ‘합법 리셀’ 시장은 정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거래되면서도 법망을 피해가고 있어, 정작 팬들이 느끼는 체감 가격 부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는 어떻게 하고 있나
암표 문제는 한국만의 고민이 아니다. K팝과 스포츠 이벤트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늘면서 각국도 대응을 강화하는 추세다. 대만은 블랙핑크·슈퍼주니어 공연 티켓이 정가의 40배까지 치솟자 정가 초과 판매 목적의 구매 자체를 금지하고, 최대 50배 과징금과 징역형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미국은 2016년 제정된 ‘봇(BOTS)법’으로 예매 시스템의 보안장치를 우회해 티켓을 사들이는 행위를 연방 범죄로 규정하고 있고, 영국은 공정거래청(CMA)이 리셀 플랫폼에 좌석 위치·정가·판매자 신원 등 핵심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며 플랫폼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공통점은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이다. 강력한 과징금과 함께, 플랫폼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실명 인증·본인 확인 등 예매 단계의 안전장치를 함께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남은 과제
문화체육관광부는 시행 첫날부터 공정거래위원회, 경찰청, 주요 예매처, 중고거래 플랫폼 등 19개 관계기관과 합동 점검회의를 열며 총력 대응 체계를 갖췄다. 신규 제도의 성패는 결국 얼마나 촘촘하게 홍보되고, 실제 적발·처벌로 이어지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정부 스스로의 진단이다.
50배라는 숫자 자체는 분명 강력하다. ‘벌금 좀 내고 말지’라던 암표상들의 배짱 영업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수준의 제재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법이 아무리 세도 적발이 안 되면 무용지물이다. 온라인 암표 시장의 은밀함, 해외 플랫폼이라는 사각지대, 그리고 ‘합법 리셀’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하는 회색지대까지 — 이번 개정 법령이 진짜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아직 여럿 남아 있다.
#암표근절법 #과징금 #티켓리셀 #암표
글 갈박사